3년 째 유방암 투병 38세 이준화 씨
진단 직후 회사의 사직 종용 끝 퇴사
청년 환자 늘지만 국가 검진 40세부터
‘자기 관리 실패’ 사회 시선도 큰 상처
젊다고 건강하진 않아 ‘아픈 몸’ 새로 봐야
"인터뷰인데 머리가 너무 부스스해서 어쩌나."
지난달 27일 부산 금정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화(38) 씨는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멋쩍어했다. 전부 빠졌다가 다시 자란 머리카락은 전처럼 빽빽해지지 않았다.
이 씨는 유방암 환자다. 3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마흔도 안 되는데 잘못 나온 거 아닌가 진단 결과를 의심했죠.”
간호조무사로 자리 잡은 지 5년째였다. 암 진단 소식을 듣자마자 일하던 병원에서는 ‘일할 수 있겠느냐.’ 재차 물었다. 사직서를 내라는 말이었다.
항암 1차 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이 씨는 암을 실감했다. 항암제는 암처럼 빠르게 자라는 몸속 세포를 공격하는 약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손상됐다. ‘누가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두피가 쑤시고 가려웠다. 한 움큼씩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다 못해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전부 밀었다. 유방암이 전이돼 겨드랑이 림프절을 절제했더니 오른쪽 팔이 퉁퉁 부었다. 구내염이 떨어지지 않았다.
독한 항암치료나 짧게 민 머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 아팠던 건 편견이었다. “암이라고 밝히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젊은데 왜 암이냐’ 하는 거예요. 암에는 이유가 없는데.” 이 씨에게도 하루아침에 심어진 암이었다. 청춘의 몸은 건강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씨에게 암의 책임을 돌렸다. 술을 먹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음식을 가리지 않아서 암에 걸린 것이라고 추측했다. ‘젊은데 암에 걸린’ 이 씨는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돼 버렸다.
■아픈 청년은 왜 안 보이나
청춘의 몸은 정말 건강한가. 청년 암 환자는 있어도 안 보인다. 전국 암 발생률 1위인 부산의 만 19~39세 암 발생자는 2019년 1873명이다. 2021년 전국의 만 19~39세 신규 암 환자는 2만 8871명으로 전체 암 환자의 8%다.
아픈 청년은 건강을 가장한다. 이 씨는 많은 젊은 암 환우가 ‘암밍아웃’(암+커밍아웃의 합성어)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고 했다. 이 씨는 “암이라고 밝히면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하니까 숨기더라”면서 “가발을 쓰고 3주에 한 번 주사 맞을 것을 1주일에 한 번씩 더 자주 맞아가면서 회사에 다니는 환우가 많다”고 말했다.
젊을수록 쉬어가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과 결혼을 하는 사회적 속도에 맞춰가지 못하면 뒤따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는 속도에 맞출 수 있는 ‘건강한’ 몸만 받아들인다.
이 씨는 “국가 암 검진은 40대부터 시작한다. 2030 젊은 암 환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육아휴직이나 병가처럼 제도적 지원이 있었다면 이렇게 사직서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과 함께 살아가기
암에 걸렸지만 일상은 중단되지 않았다. 1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은 강진경(39) 씨는 제2의 삶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강 씨는 암 진단 이후 암 환자를 위한 책 네 권을 발간했다.
강 씨는 “유방암은 재발 가능성이 많아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다”라며 “앞으로 암과 함께 살아가게 될 텐데, 암과 계속 싸우며 살 수는 없어서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기회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암 진단 이후 강 씨의 습관은 더 건강해졌고 감사한 일이 많아졌다. 이 씨도 암을 겪고 “약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라”라고 말했다. 이 씨는 언젠간 환우를 위한 ‘힐링 하우스’를 짓고 싶다고 했다.
암 환우를 위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아미북스 대표이자 암 환우 모임인 ‘아미다해’ 조진희 대표는 아픈 몸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회복 또는 실패’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회복하지 못하면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 이곳에서 젊은 암 환자들은 아픈 동안 ‘투병’만 하는 사람이 된다.
“암에 안 걸린 사람들도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고 고혈압으로 쓰러질 수 있지만, 죽는 이야기를 안 하고 사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암에 걸렸어도 암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암 환자 모두 동료이자 사회구성원이었던 사람인데 ‘치료받고 와. 네 자리는 그대로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