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있다는 미신은 오래전 수명을 다했다. 그러나 여러 논문을 통해 혈액형이 건강과는 관련이 있다는 지표들이 나오고 있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있는 항원 종류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적혈구에 ▲A항원이 있으면 A형 ▲B항원이 있으면 B형 ▲둘 다 있으면 AB형 ▲모두 없으면 O형으로 나뉜다. 혈액형 항원이 유전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1900년대부터, 혈액형과 질병 사이 연관성이 연구돼 왔다. 실제로 혈액형 항원은 적혈구 뿐만 아니라 혈소판, 백혈구, 혈장 단백질, 효소 등 각종 체내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고, 질병발병 위험과도 관련이 있다는 관찰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혈액형 별로 어떤 질환에 걸릴 위험이 클까?
▶소화기궤양=위, 대장 등 소화기 내벽에 발생하는 궤양은 O형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 연구팀이 108만 9022명을 최대 35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5667건의 소화기 궤양 사례가 나타났는데, 그 중 O형인 사람에게서 특히 위나 장에 궤양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
▶심혈관질환=관상동맥질환 등 심혈관질환은 O형에서 특히 질환 발병률이 낮다. 하버드 공중보건대 영양학과 연구팀이 여성 6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남성 2만 7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두 가지 연구를 분석해 혈액형별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확인했다. 두 연구 모두 추적 기간은 20년 이상이었다. 분석 결과, 모든 성별에서 O형보다 A·B·AB형 실험참가자의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O형은 적혈구에 항원이 없어 혈액이 응고될 확률이 다른 혈액형보다 적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항원이 가장 많은 AB형은 나머지 혈액형보다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더 높았다. 미국 버몬트대 의대 연구에선 AB형이 혈액 응고율이 높아 뇌졸중 발병 위험도 다른 혈액형보다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5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 O형은 혈전과 관련된 심혈관질환 발병 휘험은 가장 적었지만, 출혈과 관련된 질환 위험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뇨병=후천적으로 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혈당이 높아지는 제2형 당뇨병은 A와 B형에서 O형과 AB형보다 더 잘 발병하는 것으로 관찰연구 결과 확인됐다. 프랑스 구스타브 루시 센터(Gustave Roussy Institute) 연구팀이 8만 2104명을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추적한 결과, O형 그룹에서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가장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A형은 O형보다 10%, B형은 O형보다 21%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AB형은 O형보다 유의하게 높지 않았다.
▶인지기능=AB형은 다른 혈액형보다 기억력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버몬트대 의대 연구팀이 1000여명을 약 3년간 추적한 결과, 응고인자가 높은 AB형에서 인지 장애 발생률이 높았다.
▶위암=O형에서 위암이 나타날 확률이 가장 적고, A형이 위암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다. 이란 테헤란 의대,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 의대 등 여러 연구팀 연구 결과, A형은 위암 발병률을 높이는 헬리코박터 파일노리균 감염이 가장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통적으로 O형은 위암 발병 위험이 다른 혈액형보다 낮았다. 헬리코박터 파일노리균은 췌장암과도 관련성이 높다. 실제로 예일대 의대 연구 결과에서 O형일 때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적어 췌장암 발병 위험도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