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임용 앞두고 “수련병원 안갈것”
전공의 이탈 이어 의료공백 확산
복지부에 검사 파견, 사법처리 준비… 의협 “증원 재검토” 대통령실 행진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전국 대학병원에는 인턴 합격 상태에서 단체로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인턴 합격자 123명 대부분이 계약 포기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밝혔다. 부산대병원에선 다음 달 1일부터 인턴으로 일하려던 57명 중 52명이 임용 포기 각서를 병원에 냈다. 광주 조선대에서도 수련을 앞둔 인턴 예정자 36명이 전원 임용을 포기했다. 통상 대학병원은 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한 ‘새내기 의사’를 뽑아 3월 초부터 1년간 인턴 수련을 진행한다. 전공의 이탈로 ‘손발’이 사라진 상태에서 신규 인턴으로 업무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우려던 대학병원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문제는 수련 마무리 단계란 이유로 병원에 남았던 3, 4년 차 레지던트들의 계약 역시 이달 말∼다음 달 초 끝난다는 것이다. 또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전임의 역시 상당수가 같은 시기 계약이 끝난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외과계열 교수는 “인턴 충원이 안 되고 레지던트 3, 4년 차와 전임의가 병원을 떠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수술 건수가 평시의 10%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형병원들은 평시 대비 50% 안팎의 수술을 진행 중이다.
의료대란이 목전에 닥쳤지만 정부와 의사단체는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5일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후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했다. 반면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2000명은 계속 필요한 인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 필요했던 의사 충원 규모는 3000명 내외”라며 증원 규모를 줄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정부는 법무부가 보건복지부에 검사를 파견하고, 검경이 신속한 사법 처리를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강제수사에 대비했다.
의대 증원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의대 증원 적정 규모는 400∼500명”이라며 “의사는 파업을, 정부는 진압쇼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있을 수 없는 정쟁 유도 행위”라며 “당 내부 위기 탈출용”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대형병원 인턴 임용 집단 포기… “최악땐 수술 10%로 줄여야”
‘인턴 대란’에 의료공백 확산 우려
서울대 인턴 등 합격자 “출근 안해”… 손발 역할 인턴 3월 충원 불발
레지던트 추가 이탈에 병원들 막막
의대교수협 “중재 역할 하겠다”
● ‘손발’ 역할하는 인턴 충원 불발
인턴은 의대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뒤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수련 과정에 들어가는 첫 단계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과 선택 과목을 1, 2개월 단위로 순환 근무하며 경험을 쌓는다. 이후 전공과목을 택해 레지던트, 전임의(펠로), 교수 단계를 밟는다. 응급실 근무를 포함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진료 및 수술의 최전방에 배치돼 레지던트와 함께 ‘손발’ 역할을 한다.
예비 인턴들은 선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취지에서 단체로 임용포기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다음 달 4일자로 신규 인턴 101명이 임용될 예정이었지만 이 중 80여 명이 포기 서류를 제출했다. 충북대병원도 다음 달 입사 예정이던 인턴 35명이 임용포기 서류를 제출했다.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수치는 공개하지 않지만 인턴 대부분이 ‘출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22일 신규 인턴 166명 대상 오리엔테이션(OT)을 진행했는데 참여율이 극히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말∼다음 달 초 병원을 지키던 3, 4년 차 레지던트와 전임의까지 상당수 병원을 떠나면 대형 병원에서 ‘의료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금도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이 ‘뇌출혈 수술도 부분적으로만 수용 가능하다’고 공지하는 등 대형 병원의 필수의료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내과 3년 차 레지던트는 “동기 중에서 ‘안 남겠다’는 의견이 많아 3월이 되면 병원이 텅 빌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선 과거 대비 절반으로 줄인 빅5 병원의 수술 건수가 10∼20%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 ‘의료대란’ 막아야…중재 나선 교수들
‘3월 의료대란’을 목전에 둔 의대 교수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서고 있다.
정진행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호소문을 내고 “며칠 내 해결의 실마리가 안 풀리면 대형 병원은 급속히 마비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과도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하며 교수들과 만나 정기적으로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협의 주체와 협의 사항, 향후 계획 정도만 합의해도 사태 해결(전공의 복귀)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26일 오전 전공의들을 만나 정부의 태도 변화를 전제로 복귀를 요청할 계획이다.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도 25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2000명 증원 원칙을 완화하고 현실을 고려한 증원 정책을 세우길 바란다”며 “교육 및 산업계까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연합회 차기 회장인 최인호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공의들에게도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니 이제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성명에 담았다”고 했다.
교수들이 나선 배경에는 개원의 중심인 대한의사협회(의협)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전공의들이 복귀할 여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도 깔려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도 “정부뿐 아니라 의사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성명을 냈다.